디자이너계급론 그리고 지혜로움

디자이너계급론 그리고 지혜로움

양요나 19 5,713
디자이너에게 계급이란 단어를 붙이니 아주 생소합니다. 디자이너에게는 계급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자유로운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위 아래가 없고 평등함을 원하는 사람들입니다. 맞습니까? 절대 아닙니다. 디자이너에게는 3개의 계급이 있습니다.

계급은 경제적인 위치를 이야기 합니다. 디자이너와 경제적인 위치는 상관이 없다고 배운 적도 없습니다. 디자이너는 개인적인 창의력으로 만들어지는 존재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배웠습니다. 모자란 디자이너는 개인적인 능력이 없다고 치부되거나 스스로 그렇다고 인정합니다. 능력 없는 디자이너는 어떤 탈출구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타고난 능력이 그것밖에 안되니 어쩌겠느냐고 주위 사람들에게 내가 이야기합니다. 그렇게 말할 정도가 되면 디자인은 포기한 상태입니다.
디자이너의 계급은 경제적인 위치에 의해 만들어집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면 디자이너들은 주먹을 불끈 쥐며 자신을 거느리고 있는 사장이나 일을 맡기고 돈줄을 쥐고 있는 사람들을 머리에 떠올리고는 맞다고 흥분 할 것입니다. 그들은 디자이너가 아닙니다 . 그래서 디자이너의 계급에 끼지 않습니다.

디자이너는 언제나 뭉쳐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건 아마도 디자이너라는 직업이 생기면서부터 지금까지 한번도 거르지 않고 이어지는 같은 맹세입니다. 하지만, 디자이너는 뭉치지 못합니다. 뭉쳐서 사장과 디자인을 시켜놓고 돈으로 장난 치는 사람들과 싸워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들을 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돈이 목적이 된 단체가 성립이 되겠습니까?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서 부르짖는 집단이 만들어질 수 없습니다. 디자이너의 공통된 관심사는 돈이 아닙니다.

디자이너의 공통된 관심사는 '디자인은 무엇인가', '나는 디자이너인가?' 입니다. 이 주제를 위해 모인 디자인 집단(*** 협회)들은 많습니다. 이렇게 많은 디자인 집단이 존재함에는 왜 디자이너들은 홀로 떨어져 있는 느낌을 받을까요? 그 많은 디자인 집단 중 하나에 가입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먹고 살기 바쁜 디자이너들에게는 그럴 여유가 없습니다. 여기서부터 경제적인 차이에 의해 디자인 계급이 나누어지기 시작합니다.

'디자인은 무엇인가', '나는 디자이너인가?' 를 생각할 수 있는 여유는 어디에서 오는 겁니까? 경제적인 여유입니다. 그렇다면 그 경제적인 여유는 디자인을 해서 벌은 돈으로 생산되어 집니까? 아닙니다. 디자이너가 속한 가족이라는 집단으로부터 나오는 경제적인 부에 의해 여유가 만들어집니다. 대부분의 디자이너들은 경제적 여유를 가지지 못하고 학교 생활, 학원생활에 이은 사회생활로 들어갑니다. 이들에게는 '디자인은 무엇인가', '나는 디자이너인가?' 라는 질문을 하고 답을 얻은 긴 여유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어떤 디자이너가 더욱 사회적 지위의 우위를 점하게 됩니까? 경제적으로 우위에 있는 계급이 디자인 산업에서 높은 사회적 지위를 가지게 됩니다. 그것은 디자인에 대해 더욱 많은 것을 느끼고 생각할 수 있는 존재가 되기 때문입니다. 똑같은 능력을 가진 두 사람이 있습니다. 노력의 정도도 같습니다. 한 사람은 중간 계층이고 다른 사람은 상부 집단입니다. 어떤 사람이 더 멋진 디자이너가 되겠습니까?
상부집단의 디자이너는 어려서부터 경제적인 여유로 인해 문화적인 혜택을 받습니다. 주위에는 경제적 여유로 몸과 마음을 치장한 사람들이 즐비하고, 우수한 디자인들을 가까이 보고 자랍니다. 주위 환경과 사람들이 모두 디자인적으로 우수한 것들입니다. 그런 환경에서 여유를 가지고 자라고 그 여유는 사회적인 지위를 획득하는데도 그대로 이어집니다. 이들은 디자이너입니다.

우리는 누구를 부러워합니까? 바로 상부집단의 디자이너들을 부러워 합니다. 그들처럼 되고 싶어합니다. 그들이 바로 우리와 나누어진 상부 계급입니다. 역사는 계급 간의 경쟁을 통해 발전합니다. 우리는 먼저 이런 계급이 존재함을 인정하고 상부계급을 연구하고 그들과 경쟁해서 내가 그 위치에 오르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상부디자인계급과의 경쟁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대부분의 디자이너는 하위 계급이다. 디자이너는 상위계급, 중간계급, 하위계급으로 나뉜다. 언제나 계급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은 상위계급이다. 이들은 자신이 매도 당하는데 대하여 강한 거부감과 불쾌함을 표시한다. 하지만, 애써 무시해 버리고 절대 받아들이지 않는다. 받아들이게 되면 자신의 존재에 대해 스스로 비판하고 부정적으로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스스로를 부정하게 되면 삶을 지속할 수 없다. 상위계급이 계급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하위 계급 중에서도 자신의 위치를 받아들이지 않는 존재들이 있다. 이들은 스스로를 아주 높게 보고 있다. 스스로를 높이는 것은 나쁘지 않다. 하지만, 다른 이들은 아래로 보는데도 불구하고 스스로만 높다고 생각하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디자이너라면 누구나 이런 과정을 거친다. 디자이너 누구도 하위계급에 속한다고 생각하며 공부하고 디자인을 시작하지 않는다. 상위계급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상위계급이 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부어올라 있다.
하위 디자이너들은 직업으로 디자인을 하며 경제적인 생활을 유지해야 한다. 여유가 사라지면서 사람은 다급해지고 생각을 못하는 존재가 된다. 디자인에 생각이 담기지 못하고 다급함이 담기게 되면서부터 자신이 하위계급임을 절실히 느끼게 된다.

 

여기에서 얼버무려 이야기한 계급의 집단적 구성을 확실하게 이야기해야 한다. 그래야 계급간의 경쟁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 디자이너 계급은 세 개의 집단을 이룬다. 하나는 하위 디자이너집단으로 디자인을 노동으로 하여 경제생활을 유지해 나가는 집단이다. 대부분 30대 이하의 젊은 나이를 가지고 있다. 30대 이후에도 디자인을 노동으로 살아가는 디자이너는 하위 디자이너가 아닌 중간 계급인 관리 디자이너가 된다. 하위 디자이너의 노동력은 30을 전후해 사라진다.

중간계급인 관리 디자이너는 상위 디자이너를 보조하는 역할을 한다. 상위계급을 유지하는 디자이너가 누구인지를 먼저 살펴본다. 이들은 디자인을 노동으로 하지 않는 집단이다. 디자인을 통해 경제적 생활을 유지하지만 노동이 아닌 자신의 직접적인 부와 명예 그리고 유희를 위한 수단으로 이용한다. 다시 말하지만, 상위 디자이너들은 그만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다. 어려서부터 능력이 가질 수 있는 조건에서 태어나 열심히 노력을 했고 그래서 지금의 위치에 오른 것이다. 이들이 인간적으로 나쁜 사람들은 아니다. 하지만, 하위 디자이너에게도 경제적 환경이 주어졌다면 디자인을 습득할 수 있는 여유를 가졌을 것이므로, 상위 디자이너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디자인을 하위 디자이너에게 익히도록 알려줄 절대적 의무를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해 상위 디자이너는 자신의 힘만으로 지금의 위치를 차지하게 되지 않았으며, 지금까지고 있는 능력을 하위 디자이너에게 줄 의무를 가지고 있다. 여기서 문제는 상위 디자이너가 하위 디자이너에게 어떤 의무도 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상위 디자이너는 디자인 학과 교수, 이름있는 디자인 조직의 운영자 집단을 말한다. 이중에는 상위 디자이너라고 말할 수 없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어떤 능력도 가지고 있지 않는 존재들이다. 그들은 아무리 위치를 점하고 있지만, 상위계급으로 분류하지 않고 무시한다.

관리 디자이너는 하위 디자이너를 관리하거나 상위로부터 관리를 받는 대상이다. 상위의 뜻을 받들어 실행하거나 하위 디자이너에게 전달한다. 중간계급인 관리 디자이너는 계급 경쟁에서 제외된다. 이들은 상위 디자이너로부터 인정을 받아 그 자리에 오른 사람들로 그 신임이 없어지면 바로 계급에서 제외된다. 경쟁의 대상이라기 보다는 그냥 필요해서 있는 집단이다.


기존의 계급론은 노동자와 자본가로 나누어 물리적인 혁명을 통해 한쪽 계급을 무너뜨리는데 목적이 있었다. 계급론은 사회주의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에서도 통용되는 개념으로 노동자 계급이 그들의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보이지 않는 힘을 통해 꾸준히 눌러왔다. 노동자가 부를 습득하면 그만큼 자신의 것을 잃어버리므로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노동자가 자본가의 경제력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는 행위도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들은 서로를 막아내기 위해 물리력을 사용하게 된다. 자본가는 자본으로 권력적 폭력을 행사하고, 노동자는 이에 대해 몸으로 맞서게 된다. 이런 과정은 서로에게 큰 타격을 주게 된다. 맨몸으로 달려드는 놈이 더 다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그래서 우리 하위 디자이너 계급은 이런 물리적 폭력은 전혀 생각하지도 않는다. 폭력적 부딪침으로는 하위 디자이너가 상위 계급으로 올라설 수 없다. 폭력적 부딪침이란 상위 디자이너를 마구잡이로 끌어내리고 내가 그 자리에 앉는 행동이다. 이렇게 될 수도 없고, 이렇게 올라선 자리에서 제대로 상위 계급의 역할을 할 수도 없다. 우리는 경쟁이라는 수단을 써야 한다. 상위 디자이너 계급과의 경쟁을 통해 그들의 위치에 같은 힘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들의 자리는 그들의 것일 뿐이다. 우리는 우리의 자리를 찾는다. 지금 하위 디자이너는 자리가 없다.

상위 디자이너 집단의 미치는 영향이 올바르다면 우리가 나서서 그 자리로 오를 필요가 없다. 하지만, 그들은 큰 한계점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나설 수 밖에 없다. 그들은 어떤 한계점을 가지고 있는가? 그것을 안다면 경쟁을 치루어 낼 수 있다. 우리는 그들에게 완전히 노출되어 있지만, 그들에 대해 우리는 전혀 모르고 있다. 경쟁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경쟁의 대상이 누구인지를 알아야 한다. 그들은 상위 디자이너들이며, 이들이 존재하는 것과 그들이 누구이며 어떤 한계를 가지고 있는지 철저히 분석해야 한다.


하위 디자이너들의 일차적 경쟁대상은 상위 디자이너들이다. 하지만, 우리들의 궁극적인 경쟁대상은 아니다. 상위 디자이너들은 한계점을 가지고 있다. 상위 디자이너들은 경제적으로 하위 디자이너보다 우위에 있지만 계급이라고 불릴 만큼의 막대한 부를 축적하고 있는 집단이 아니다. 그만큼 사회적으로는 힘이 미약하다. 다만, 하위보다는 높은 위치에 있기에 많은 것을 가진 것처럼 보인다. 상위는 교수집단, 디자인전문회사 운영자 들이다. 여기에 디자인 잡지사나 출판사, 교육기관이 들어갈 수도 있지만 이들의 기반은 아주 약하다.

하위는 상위와의 경쟁을 통해 그 위치를 상승시켜야 하지만, 진정으로 올라가야 할 위치는 상위 디자이너들이 점하고 있는 곳이 아니다. 그들의 위치는 아주 불안하며 분명한 한계를 가지고 있다. 그들의 한계를 안다면 그들과의 경쟁에서 이겨내고 진정한 경쟁계급을 만날 수 있다. 상위 디자이너들은 자본을 축적하고 있는 상태가 아니라, 자본을 축적하고 있는 사람들에게서 흘려내는 자본과 힘을 받아 들여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 이들이 받아들인 것들이 다시 하위 디자이너에게 흐른다. 즉, 상위 디자이너는 가진 자에게 복종을 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디자인 안에 지혜로움을 담기보다는 이익을 위한 장치들을 담아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이런 생각은 다시 하위로 흘러내려 완벽한 세뇌를 하게 된다. 누구든 자신의 환경에서 벗어나 가르칠 수거나 작업을 할 수 없다. 상위의 한계점이다.

디자이너는 미디어에 정보를 채우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다. 정보는 자본을 필요로 한다. 그러하기에 디자이너에 의해 해석된 올바른 정보가 미디어로 담겨지는 것이 아니라, 이익을 위해 만들어지는 자본의 정보만 들어 찬다. 디자인에 들어차는 정보는 바로 그것을 만드는 디자이너에게 채워진다. 디자인전문회사의 운영자들이 이러한 경우다.
교수집단은 많은 경우 디자인을 하지 않는다. 디자인은 미디어에 정보를 담아 유통하는 과정을 말한다. 디자인을 하지 않으면서 디자인을 가르친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이들은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지 알고는 있다. 하지만, 설명(이야기)하지 못한다. 느끼고는 있지만 설명을 하지 못하는 것은 디자인 안에 자신의 생각을 담아내는 일들을 꾸준히 하고 있지 않다는 뜻이다. 이들에게는 많은 시간이 주어진다. 그 시간은 연구를 하라고 주는 것이다. 학생들에게 설명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디자인을 꾸준히 하도록 주어지는 시간이다.

하위 디자이너가 점해야 하는 위치는 상위 디자이너가 아니다. 교수나 조직의 운영자가 되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사람이 달라져야 한다는 뜻이다. 하위 디자이너는 태생 자체가 틀리다, 그래서 상위 디자이너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경쟁에서 이겨 새로워 지는 방법이 바로 "생각혁명" 이다.



생각(지혜로움)혁명
계급론을 정리해본다. 우리는 하위 디자이너 계급이다. 그리고 우리의 경쟁 상대는 상위 디자이너 계급이다. 하지만, 둘 다 디자이너라는 이름으로 자본의 지배를 받고 있다. 아무리 상위 디자이너라고 하지만, 계급이라고 불릴만큼의 자본과 힘을 가지고 있지는 못하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상위 디자이너들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라는 동정론이 아니라. 그 한계를 항위 디자이너들이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가를 고민해야 한다.

하위 디자이너는 먼저 상위 디자이너를 경쟁을 통해 이기거나 같은 위치를 차지해야한다. 일차적으로 경쟁에서 이겨야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하위 디자이너가 상위디자이너와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생각을 하는 일이다.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생각을 하는 일은 거의 혁명과도 같은 변화를 만들어낸다. 상위 디자이너는 생각의 압축인 느낌을 가지고는 있지만 풀어내는 일에는 익숙치 않다. 하위 디자이너가 이미지를 생각을 통해 풀어내고 그 느낌을 알 수 있다면 상위 디자이너보다 높은 위치를 가지게 된다. 그들이 보는 것을 보고, 그들이 느끼는 것을 느끼며, 그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이 과정을 거친 후에 진정한 권력인 자본과의 싸움이 시작된다.

자본은 디자인 안에서 참다운 인간을 몰아내려 하지만 생각을 가진 디자이너들은 이를 막아낼 수 있다. 

Comments

곽승균
오타가 많네요 "인간이란 자의를 가진 이성체..." 
곽승균
계급운운하니 한말씀 드리겠습니다. 글을 올리신분이 표현한 계급론이 따져보면 맞는거 아닌가 이렇게 생각할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자세히 보시면 이런 계급론과 관련된것들은 모든직장 모든직종에 포함됩니다.
여기서 중요한것은 자본주의로 대표되는 사회에서 주인공은 흔히 계급으로 운운되는 상위계급자들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자본주의의 주인공은 당연히 자본이죠..
그럼 계급으로 나뉘어지는 사람들은 뭘까요 그들은 단지 사용자일 뿐입니다.
어떤 소파에 사람이 앉아 있다가 일어나면 그 사람이 1억을 가진 사람이든 10억을 가진 사람이든 단지 앉아있다가 떠나는 사람일 뿐입니다.
사회계급론을 피력하시는 분들은 단지 자신이 그위치에 있지 못한 사용자이기때문에(이경우에 특히 감정적인 개입이 많아집니다) 계급론을 극화시키는 경향이 있으신듯 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인정하는것처럼 사람은 이기적인 동물입니다. 따라서 자신의 이익을위해서 모든 노력을 기울이는것이 당연합니다 여기서 모든 노력이란.. 자신의 현재지위, 배경, 인맥, 경재적여건, 자신의 능력등을 모두 포함하는 것입니다. 가령 취직을 하기위해서 자신의 이력서만 들고 회사에 지원하는경우라 하더라도 회사 관계자들은 이력서 내용상에있는 객관적지표라고 알려진것들(학력, 경력, 나이 등등)에서도 자신의 연고를 찾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이것은 어느곳에든 의사결정자들은 인간이라는 공통적인 변수가 있기때문입니다. 객관적으로 표현할수 없는것이 인간입니다. 모든 법칙들을 설명할대 대체로 어느정도의 제한적 범위를 두는경우에도 예외가 존재합니다. 앞으로 모든 의사결정이 컴퓨터로 처리된다면 그런일이 없을거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절대 그럴일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컴퓨터의 알고리즘을 만드는 사람도 인간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컴퓨터가 자아를(인간에 준하는) 가지게 된다면 인간의 기준이 바뀔거라고 생각합니다. 미래의 인간이라는 개념은 의를가진 이성체라고 정의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현재의 계급화된것처럼 보이는 상황이 만족스럽지 못하다면 여러분도 인맥형성을 위해 노력하시거나(디자인계열과 관련된 유명한 유학코스를 밟으시거나..), 능력항상을 위해 도전하시거나(각종 디자인 콘테스트에서 입상...), 경제적부를 축적하신후에(복권당첨을 노리시는것도..) 지금 생각하신 계급사회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계급의 상위계층에 위치하는 사람들이나 또는 그 자리에 쉽게오른 사람들은 그러한 위치에 도달하도록 여건을 조성하는 탁월한 재능이 있다고 생각되어집니다. 설서 그 자리에 있다 하더라도 재능이 부족하다면 망하겠죠(투자실책, 사기, 명예실추... 등등)) 
일레인
오!!!!!엘모님 그때 출력물 어뜨게 되시였죠.........
다른데서 하시었나요........ 
엘모
사회계급론에서 노동자라는 말을 단순히 디자이너라는 말로 대치만 하신듯.. 어려서부터 받은 혜택덕분에 상위디자이너가 된다? 선뜻 공감하기 힘드네요. 원래부터 나눠진 것이 아니라 성공한 사람과 아직 못한 사람의 차이겠죠..

그리고..양요나님.. 스스로 하류라고 생각해버리는것.. 이게 앞으로 다가올 성공을 가로막는 큰 장애라고 생각합니다. 편협한 시각으로 업계 자체를 판단하기는 힘든 법입니다. 더 큰 시야를 가져보심이 좋을듯 합니다. 태생적 한계를 극복하고 성공할 수 있는 방법이 많을 것입니다. 
OOO
누구게님 살아게시구만......근데 위에 글 3줄로 요약 바람........-_- 
거리
뭘까?

음 ~ 자기의 가치와 자신이 처한 상황, 그리고 상위와 하위를 구분짓는 일련의 것들
그 이전에 디자이너가 되기위해 아니, 디자이너가 되어서 얼마많큼의 노력을 했느냐.
또는 알기위해, 이쁘게 만들기위해 노력을 하였느냐 라는것이 가장 우선시 되어야 할것 같은데... 이는 수천장 수만장을 그려보고 실행해보고 작업에 임하는 디자이너가 있는 반면 단 몇시간 만에 컴터앞에서 뚝딱거려 만들어 내는 디자이너가 있기에 그렇하다라고 말하는 사람, 히히 그리고 열라 일만하는 디자이너 그리고 노는 디자이너 또 학습력이 뛰어난 디자이너 그리고 아주 저조한 디자이너 많이 배운 디자이너 적게배운 디자이너 이모든 디자이너들이 생존해가며 디자인의 왕국을 이루는데 이는 언뜻 보아서도 확연하게 누구라도 구분지을 수 있다... 이모든 것을 놓고 볼때 디자이너는 무엇에 의하여 무엇을 움직이고 무엇을 완성하는 사람일까?

크던 작던 많던 조금이든간에 이일을 한다... 단순히 시간이 지나 호봉에 따라 급여를 받고 돈많이 주는 놈한테 공들여 제작해 주고 싶어도 능력이 안되서 못하는 그런 일... 아파
평가를 받기 이전에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과연 잘하고 있는지..., 하핫 
化朗
하위디자이너라...
뭐 너무 거창해서...^^;;;; 
자이
읽다가 졸았당...ㅡ.ㅡ 
루달스
음냠.. 무지 어려워서 무슨말인지 모르겠지만 뭔가 숨어 있는 이야기가 있겠죠..
알고 싶네...걍 저는 왠지 디자이너계급론이 아니라 일반계급론 같은디... 디자이너 말을 기획자, 또는 경영자로 바꾸면 어떨지..생각해 봅니다.. 
아이스키위
심리테스트 글처럼 여러 문장에서 동감가는 글~
물위의 백조의 자태같은 보여지는 디자이너의 매력에 빠져 물 밑 백조의 다리같은 현실의 디자이너가 되고 ...가끔 아주 잠깐이지만 미운오리새끼의 결말이 되기도 하고..
사실 이런 반전의 기쁨을 보람이라 생각하며 디자인을 사랑하는 나.
동감가는 글이긴 한데 인정하기 싫기도 하고..휴~
마지막 "자본은 디자인 안에서 참다운 인간을 몰아내려 하지만 생각을 가진 디자이너들은 이를 막아낼 수 있다." 이글만 내 마음에 새겨봅니다. 
KENWOOD
참나,,,자라나는 새싹들을 위해서리,,,emoticon_001 
명랑!
토맥 말빨 '거리'는 여기 안끼나? ( @@) (@@ ) 두리번~두리번~~
KENWOOD....emoticon_120 버틸 때까지 버틸껴!
직장생활 최장수 디쟈너로....emoticon_101 
석실장
드디어 누구게님 등장하시다. 역시 글은 길어야 되나보다emoticon_104 
누구게
경제적 토대가 결정하는 환경적 요소들로 어떤 개인의 문화적 측면을 설명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그렇게 믿는 사람은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닐 것입니다. 부정한 권력을 타도하고 권력을 탈취하는 것이 좌파혁명의 실현이라고 믿는 사람도 역시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닐 것입니다. 생각을 바꾸면 현실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우리의 생각은 행위 안에 있고, 보고, 듣고, 느끼는 것도 모두 능동적 행위입니다. 디자인은 행위의 과정 안에 있고 그 흔적들이기도 합니다. 디자인은 흔히 그릇, 또는 전달의 방편이라고 여겨지기도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디자인의 정치성은 그 그릇으로서의 존재 자체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상위" 디자이너가 우수한 디자인을 한다고 말할 수 있으려면 그것은 단지 기능적으로 우수할 뿐 아니라 정치적으로 "옳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옳은" 또는 "바른" 디자인은 진보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진보적인 것이 "옳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상위 디자이너의 행위에서 파생되는 디자인들이 만약에 진보적이지 않다면 그것은 디자인적으로는 우수하지만 타도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디자인적으로도 우수하다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만약 "하위" 디자이너가 적어도 "디자인적인 면"에 있어서는 "상위" 디자이너의 전문성과 재능을 획득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느낀다면 그것은 이미 타도 대상을 설정한 이유 자체를 무산시키는 모순이 됩니다. 반대로, "상위" 디자이너의 정치적, 경제적 위상이 진보적이지 못 하다고 할 지라도 디자인이 가치가 있다면 그 디자인이 디자이너의 정치경제적 위상을 배반하면서까지 진보적이기 때문이며 그것은 디자인 자체가 진리를 배반하기 어려운 속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상위" 디자이너의 정치경제적 위상만 가지고 그들의 작업물의 정치적 속성을 판단할 수 있다는 전형적인 환원주의적 사고방식을 항상 경계해야 합니다. 특히 디자이너이기 때문에 "하위" 디자이너는 디자인이 전달하고 있는 대상이 아니라 그 전달 방식과 전달의 질감에 숨어 있는 계급적 냄새에 더 민감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나의 적의 적은 우리 편이라는 착각에 빠지지 말아야 하구요.

"상위" 디자이너, "하위" 디자이너라는 규정이 너무 단순하고 편의적이긴 하지만, 만약 스스로가 "하위" 디자이너라고 느낀다면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상위" 디자이너가 벗어나기 어려운 유행의 굴레에서 조금 더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자유가 더 "올바른" 디자인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줄 가능성이 있다는 것에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가능성"에 불과합니다. 오직 행위 만이 우리를 구원할 것입니다. 생각이 아니라...^^ =3 =3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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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게 ( noogooge고오올배앵이digidigiGuerrilla쩌엄커엄 )
digi는 한 번만...^^
쪽지는 사절합니다. 개인적인 일로 연락하려면 편지로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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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NWOOD
음,,,명랑님,,,이제 물러나실때가,,,emoticon_003 
스핑크스
^^;;; 
win^0^
길다..아~ 
명랑!
헉 헉.... 논문이다. 
..........
기분이 별로 안 좋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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