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

임시

메론냄새 2 10,777
呪術美術의 象徵性관 그 形象化에 대한 硏究
- 符作의 現代的 解析과 變容을 中心으로 -

일반적인 의미에서 볼 때 예술은 인간의 기본적인 정신활동이다. 오늘날에는 물론이거니와 원시시대에도 인간은 시대의 상황에 맞는 다양한 예술 활동을 하였다.
 그것은 실생활이나 문화양식 또는 종교의식 등과 관련이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는 예술이 ‘종교의식’ 그 중에서도 특히 ‘주술’ 과 같은 연관성을 지니고 있음을 주목하고 한다. 왜냐하면 오랫동안 인간의 예술에는 종교적인 면이 유독 강하였는데, 종교와 예술이 혼연일체가 된 원시시대와 고대가 그러했고, 예술이 종교의 수단이었던 증세가 그러했으며, 예술이 자율화되었을 때조차도 예술은 문화종교의 면모를 보였기 때문이다.
심지어 모더니즘의 아우라가 사라진 포스트 모던시대에도 유사(類似)종교의 형태는 여전히 잔존하고 있다.
물론 산업혁명으로 대변되는 근대의 과학혁명에 의해 ‘주술’은 대개 과학과의 연관성 속에서 비과학적인 것으로 이해되어 왔다. 하지만 오늘날과 같은 최첨단 과학기술 문명의 시대에도 주술적인 기능이 사회문화 전반에 내재되어 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과연 이러한 사실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과학기술의 시대에 많은 이들이 비과학적인 주술에 의존하며 주술과 깊은 관련을 갖고 있는 까닭은 무엇인가?
본 연구는 바로 이러한 물음에 대한 해답을 모색해 보는 데 초점을 두었다.

Ⅰ. 주술의 개념에 대한 예비적 이해
주술에  대한 초기 서양학자들의 연구와 이후에 나타난 입장들은 대략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프레이저(Frazer)로 대표되는 <진화론적 입장>이고, 두 번째는 말리노프스키(Malinowski)를 대표하는 <기능주의적 입장>이며, 세 번째는 앞의 두 입장보다 좀 더 후대에 등장한 레비-스트로스(Levi-Strauss)의 <상징주의적 입장>으로서, 이 입장은 진화론적 입장과 기능주의적 입장이 각각 주술의 ‘진화’ 와 ‘기능’만을 다루었다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주술 그 자체의 상징적인 의미가 무엇인지 해명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본 연구는 이러한 각각의 입장을 정리해 보고자하며, 특히 세 번째의 입장에서 ‘주술’ 에 대해 해석하고 이를 통해 근대 이후 서구의 주술 개념이 특수한 역사적 · 문화적 상황에서 만들어진 하나의 힘이 있는 상징임을 밝혀볼 것이다.
프레이저는 ‘진화론적인 사고’에 입각하여서 그의 저서 『황금가지』를 통해 인간의 지적인 측면인 사고 구조를 중심으로 주술, 종교, 과학의 범주를 다루고 있다.
물론 여기에는 인간의 지능이나 지식이 발전함에 따라서 인식의 범주와 수준도 발전적으로 변한다는  ‘진화론적 사고’가 짙게 깔려있다. 그는 기본적으로 주술과 과학 두 영역 간의 관계도 인간의 사유 과정의 발전단계로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인간의 사고 구조는 기본적으로 ‘공감의 원리(sympathetic principle)' 에 근간하여 진행되며, 과학적 주술은 똑같이 이러한 공감의 원리를 바탕으로 하여 진행되는 인간의 인식구조라는 점에서 동일한 지반에 근거하고 있다고 한다.
이에 반해 말리노브스키는 ‘기능’이라는 측면에 맞추어 주술을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심리 상태에서 기원한 것으로 파악하고 원시사회에서 실제적인 하나의 기술로서 서로의 심리를 안정시켜 주는 기능을 한다고 보았다. 그리고 원시적 · 원초적 의미의 주술개념 생성은 인간의 보편적인 심리와 사고 구조에 대한 관심으로 인해 주술의 본질적인 측면에 대한 이해를 시도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고 주장한다. 말하자면 그는 원시인이나 문명인 가릴 것 없이, 인간이라 주술을 믿든지 안 믿든지 간에, 누구나 감정의 경험을 중요시한다는 점에 착안하여, 인간의 감정을 표현하는 통로로서 ‘주술’을 이해하고 있다. 또한 주술과 종교는 인간의 능력을 뛰어 넘는, 인간보다 강한 힘을 가진 초자연적인 존재를 상정하는 대에서 출발하고 있음에 주목하였다. 즉, 그는 주술과 종교의 기능이 초자연적인 영역을 통해서 인간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상활들을 극복하게 해주는 것에 있다고 본 것이다. 따라서 근대 이수 ‘주술’ 개념은 즉각적인 효력을 기대하는 믿음과 초자연적인 힘을 조작한다는 인간 중심적인 성격에서 그 본질과 의미를 찾을 수 있게 되었다.
말리노프스키를 중심으로 하는 이러한 기능주의적 입장 이후 새로이 ‘상징주의적 입장’ 이 등장한다. 레비-스트로스를 중심으로 하는 이 입장은 기능주의적 입장이 중요한 점을 간과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다시 말해 주술사는 상징적인 언어, 과학자는 구체적인 언어를 구사하고 있다고 간주하여, 주술사와 과학자들은 서로 다른 개념체계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을 명확히 구분하고자 하였다. 따라서 여기서 중요한 것은 주술과 과학이 전제하는 서로 다른 사고 유형의 특징(본질)이 무엇이며, 어떻게 그들이 번역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한 예로 비티(J. Beattie)에 의하면,
주술은 본질적 · 상징적으로 해석되어야 하며 도구적인 것으로 해설되는 것은 표면적인 이해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레비-스트로스의 상징체계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는 그의 『구조 인류학』제10장(상징적 효과), 13장(아시아와 아메리카의 예술에 있어서의 도상표현의 분할성), 14장(물고기로 가득 찬 동체를 갖는 뱀)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특히 제13장에서는 원주민의 그림이나 문신, 무늬 등 다양한 문양의 도상에 나타난 상징적 의미에 대해 자세하게 해석하고 있다. 여기서 드러나듯이 상징은 인간 본질의 심오한 표현이다. 상징은 모든 시대 모든 문명에 있어 왔거니와, 구석기시대 동굴 벽화에서 처음 나타난 이후 문명과 함께 발전해 왔다. 그러나 상징은 단순한 문화적 인공물 이상의 것이다. 올바른 문맥 안에 있을 때면, 그것은 여전히 우리에게 힘차게 말을 걸고 우리의 지성, 정성, 영혼에게 얘기한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상징 연구는 인류자체에 대한 연구라 할 수 있다. 인간의 커뮤니케이션은 대체로 문어 및 구어, 이미지 혹은, 동작의 형태를 취한 기호에 의존한다. 하지만 이러한 기호는 단지 실제에 대한 표상일 뿐이다. 즉 의식적으로 만들어져 금방 알아볼 수 있는 우리를 둘러싼 세계의 물체, 행위와 생각인 것이다.
이과 같이 상징은 내면적 세계 안에서 직접적인 표현으로는 잡히지 않는 어떤 깊은 직관적 지혜를 나타낼 수도 있다. 오랜 역사 속에서 각각의 문명마다 그 주체자들은 상징의 힘을 인식하였고, 그 상징을 미술, 종교, 신화, 제의에 두루 사용해 왔다. 현대 서구의 합리주의는 종종 이러한 상징을 부정하지만 상징의 내면적 의미는 오늘날에도 줄어들지 않았으며, 특히 미술, 문학, 영화 등 각 방면에서 지속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본 연구는 앞에서 언급했듯이, 미술(예술)과 주술과의 관계를 레비-스트로스의 상징주의적 입장에 파악하여 ‘주술미술’이 동시대 미술 속에 여전히 자리매김하고 있음을 살펴보고자 한다. 오늘날 우상 파괴 이후 미술이 갖고 있는 주술적인 힘은 그 영향력을 잃게 되었지만, 우리의 의식에는 구석기인들이 느꼈던 믿음이 아직도 살아 숨 쉬고 있기 때문이다.

Ⅱ. 주술미술의 상징적 형식
역사 이전 시대로 거슬러 가면 미술과 주술은 분화되지 않는 하나의 몸이었다. 선사시대의 동굴벽화를 그린 화가는 다름 아닌 사면(무당)이었고 그들은 그 당시로서는 가장 중요했던 사냥에 주술력은 도입한 사람이었다. 예컨대 춤과 노래와 연극이 한 몸을 이룬 디오니소스제(祭)에서는 가짜 왕을 만들어서 그 왕을 추앙한 다음, 가장 소중한 것을 재물로 바친다는 명분으로 그를 죽이기도 하였다. 이러한 정화의식이나 희생제의에는 시지각적인 이미지와 심리적인 현상, 그리고 주술력이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즉 주술은 시지각적인 이미지가 만들어내는 상징에 대한 이해나 합의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이를테면 육체적, 정신적인 질병을 치유하기 위한 인디언의 모래 그림이나 아프리카 원주민의 치유 의식이 그렇다 이는 상징에 대한 믿음이 아니고서는 생각하기 어렵다. 실제로 주술은 특정의 물건이나 행위가 지시하는 상진에 대한 강한 신뢰에 기초한다. 이러한 상징에 대한 믿음에서 드러나듯이, 선사시대에 주술은 주로 실용적인 목적에서 사용되었던 것 같다. 이는 그림에 창을 던진 흔적이나 동물로 변장한 인간의 그림, 또는 당시의 동물화가 자연에 충실하게 그려졌던 점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선사시대의 이러한 주술과 미술의 개념을 한마디로 규정해 보면, 실생활과 직결된 주술을 바탕으로 기억표상에 의한 생명감을 표현하는 자연주의적 양식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인류의 역사와 함께해 온 미술은 역사의 기나긴 흐름 속에서 수많은 외적인 자극, 즉 이념의 변화와 물질문명의 발달 그리고 사회 동향 등 여러 가지 요인으로 인해 그 본질적인 의미가 퇴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본능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현대의 예술가들은 과거 미술의 리얼리티를 반성하고 여러 가지 새로운 양식의 실험을 반복하면서 제한 없는 자유영역에 예술창조의 의지를 세우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러한 예로서 현대미술에서 미술과 주술의 공모, 말하자면 주술사 즉 무당으로서의 예술가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초상 사진과 주술의 잠재 효과에 대한 곰브리치(Ernst Hans Josef Gombrich)의 예화나, 사회를 조각하는 무당으로서의 예술가로서 인정되는 요셉 보이스(Joseph Beuys)나 로리 앤더슨(Raurie Anderson)이 그러한 예이다. 특히 보이스는 동시대 문명을 병든 것으로 진단하고,  그 병을 치유하는 주술적인 치유 효과와 수단으로서의 예술을 실천한다. 영국의 대지예술가 리처드 롱(Richard Long)의 예술관 역시, 오늘날 인간의 문명이 낳은 여러 가지 폐해와 질병이 어떤 방식으로 치유되어야 하는지를 암시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그리고 급진적 유토피아의 욕망표현 방법으로, 고대 의생 제의를 연상시키는 행위극을 연출한 유럽의 행동주의 미술가 헤르만 니취(Herman Nitsch)나, 여성의 월경과 남성의 정액을 상징하는 케첩과 마요네즈로 뒤범벅된 자신의 성기로 서거의 테러에 가까운 행위극을 연출한 폴 맥카시(Paul McCarthy) 역시 현대의 샤먼에 다름 아니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문명에 대한 거부와, 자연에 기초한 원시적인 주술력으로 문명을 정화시키려는 의식이 내재하고 있다.
이와 같이 주술은 사실상 시지각적인 이미지에 국한되지 않고 총체적인 현상으로서의 미술과 관련이 깊다. 물론 좁은 의미로서의 시지각적인 이미지 그 자체만으로도 주술과의 관련성을 살필 수 있지만, 토탈 아트 · 크로스 오버라고 하는 경계의 제약을 넘나드는 동시대 미술(예술)의 큰 틀 속에서 그 가능성을 찾아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동시대 미술에 있어서 미술과 주술과의 공모는 새로이 발견된 것이기보다는 단편적으로 또는 잠재적으로 존재해오던 형식이 강화된 것이면, 또한 동시대 미술의 한 특징으로 표면화된 것이다.
본 연구는 이러한 현대미술의 흐름 속에서 주술미술의 다우이성을 고찰하는 데 중점을 두며, 그 범위를 한국무속문화에 대한 접근으로 한정하고자 한다. 그리고 무속과 현대미술이 어떤 상관관계에 있는가를 논의하기 이전에 무속문화에 대한 각성과 현대적 의미에 대해 살펴보고, 또한 본인의 작품 이념인 생태학적 인식을 통하여 공생과 상생의 의미를 화두로 하여 미술사 속에서 현재 작품의 위치를 자리매김하고자 한다.

Ⅲ. ‘무속(巫俗)미술’의 상징적 특징

오늘날 현대생활이 복잡해짐에 따라 사고방식이나 가치관에도 많은 변화가 야기되었고, 이는 회화의 형식, 표현방식에까지도 파급되는 양상을 보여 주고 있다. 본 연구는 이러한 변화 속에서 시대의 흐름을 따르기보다는 주술미술의 근원인 무속신앙의 고유한 본질을 변화시키지 않고 그 정신을 현대적 미감으로 해석하고자 한다. 이는 최근에 민족적 현실이나 역사, 전통문화에 대한 탐구 등 우리 것에 대한 자각과 관심이 눈에 띄게 고조되고 있는 것과 맥락을 같이 하는 것이다. 이러한 무속 미술의 특징은 크게 네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첫째, 원초적 세계에 대한 시 · 공간적 접근을 통한 시원으로서의 회귀적 측면
죽음은 원래 있었던 세계로의 회귀이며 새로운 세계로의 출발을 의미한다. 회귀사상은 정체(停滯)의 상태에 스스로 머물고자 하는 심성의 발로이다. 하지만 정체는 두려움보다 오히려 자연의 이치를 따르는 조화로 받아들여진다. 무속적 시간 속에서 인간의 확대된 세계에 대한 인식을 갖게 된다. 즉 인간들만의 세계가 아닌 신과 인간이 함께 하는 세계이고,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가 함께 하는 세계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다신(多神)들에 둘러싸여 공생 공사하는 민족이 바로 한국인이라 할 것이다.
둘째, 신화적 이미지의 주술적, 상징적 측면
제의를 수행하는 행위의 특징은 무엇보다도 비일상성, 탈현실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현실에서 좌절된 꿈을 주술에 의해 실현하거나 초월적 능력을 빌려 인간능력의 한계를 벗어나고자 하는 것이다. 곧 일상적 삶을 벗어나 신화적 상징의 세계에 접근하는 것이다.
셋째, 내재되어 있는 기억에서 추출된 사고의 초자아적 측면
근원에의 추구를 위한 삶이란 인간본성의 한 면인 인식의 세계만으로는 불가능한 것이며, 인간의 실재 파악이라는 점에서 무의식세계를 자각하고 깨달음으로써 누릴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무의식은 창조활동에 있어 대기 속에 흐르고 있는 근원의 존재에 대한 전율을 느끼게 하고 사고의 가능성, 창조적 신념을 갖게 하는 것이다.
넷째, 낙서, 유희적 이미지를 통해 나타나는 기호적 측면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낸다는 것은 기존 질서를 파괴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러한 면에서 무속에 내재된 정신과 에너지는 기존 주류의 사고에 생성의 공간을 마련한다. 측면에서 오늘 우리에게 새로운 지향점으로 다가온다.
우리는 무속을 통해서 그 속에 내재되어 있는 우리 민족의 미에 대한 잠재적 창조성을 발굴하고, 소외되어진 무속현상에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하여 민족문화의 전통성을 새롭게 인식하는 방향으로 우리의 의식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전통이란, 오랜 세월 하나의 문화권에서 많은 사람들이 편하게 느끼는 집단 무의식이라 할 수 있다. 민족적 원형 및 정신과 정기라는 개념은 단순한 국수주의, 문화적 쇄국주의와는 다르다. 세계화, 국제화 시대에 포스트모더니즘과 탈 현대의 시간 속에서 우리 민족의 원형을 확인하고 되살려 보며 그 의미를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시도는 의미가 있는 것이다.

Ⅳ. 무속미술의 분석 및 검증
여기서는 Ⅲ장에서 다룬 네 가지 동기와 계기의 유형들에 부합되는 다양한 작가들을 통하여 조형분석법으로 ‘주술적 상징성’ 의 측면을 분석하고자 한다. 특히, 현대미술에서 주술적 상징성의 예술적 표현을 두 개의 패러다임으로 나누어 살펴보고자 한다. 우선 사회조각과 원초적 예술을 위한 주술미술의 측면을 요셉 보이스를 통해 알아보고, 불교의 습합을 통합 주술적 형상을 도출한 박생광(朴生光)을 분석함으로써 주술미술의 입지를 강조하고자 한다. 또한 박생광과 요셉보이스와의 비교를 통해서 한국무속미술의 상징물인 부작의 현대적 해석과 변용이라는 측면으로 접근한 본인 작품이 두 작가와 차별화되는 점을 부각시키고자 한다. 이는 우리 굿 문화의 정신적 측면을 생태학적 입장으로 접근한 것으로, 주술의 현대적 해석인 자연친화적 ‘풀이’이며 공생과 상생의 의미이다.

Ⅴ. 본인의 작품에 구현된 부작(符作)1)의 현대적 해석과 변용

이 장에는 본인이 1990년부터 제작해온 <符> 연작에 대한 조형분석을 다루고자 한다. 주술미술을 수용적 측면에서 고찰함으로써 본인의 작품들과 연구의 주제인 ‘주술미술’과의 연관성을 다음 세 가지의 측면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 한국기층문화의 원초적 의식 배경인 무속의 주술성을 고찰한 후, 부작의 개념 및 미적 요소를 사회성, 상징성, 회화성의 관점에서 연구한다.
둘째, 부작의 수용을 통한 발전적 모색으로 부적(符籍)의 기호학적 해석을 통하여 부적의 현대적 변용의 가능성을 살펴본다.
셋째, 부작의 현대적 변용의 가능성을 통하여 본인 작품의 특성을 기호학적 측면으로 분석한다.

본인의 작품은 현대인의 기복소재(祈福消災)와 화합(和合)을 위한 주술적 의미로서, 강신무가 엑스타시에 이른 행위의 표출과 같은 과정으로 제작된다. 이는 무속신앙의 정신적 상징체계로서, 현대인의 삶에 대한 감응을 기호화 또는 단순화 된 형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한국문화 원형인 무교와 신바람>
작품의 정신적 측면은 한국의 문화원형인 무교(風流道2)) 의 儒, 佛, 道 통합사고를 통하여 생태학적 인식사고로 접근한다. 이는 사회에 대한 직접적인 ‘풀이’의 표현이 아니라 자연을 구성하는 소재를 통한, 현실에 대한 ‘상징’, ‘은유’, 그리고 ‘알레고리’로써 삶에 대한 연속성을 의도하는 것이다. 즉 자연과 사회의 관계에서, 공생과 화합을 통해 생태학적 수준의 상생문화가 실현되기를 갈구하는 의미이다.
형식적 측면은 기운생동한 필선과 한지 원료의 물성 및 자연 돌가루 채색을 통하여 한국적 미감을 표출한다. 각 형상들은 유기적 관계를 통해 화면에 자율적인 생명감을 부여하고 있다. 또한 각 형상들은 반구상적인 형상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생명체의 메타포로 등장하고 있다. 이들은 자연의 조화 속에 내재된 질서와 리듬감으로서, 자발적이고 생동적인 화면을 구성하는 데 원동력이 되고자 하였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민족문화의 원류와 사회문화의 기층에는 무속성이 자리하고 있다. 우리는 동시대 미술 속에서 무속적 사고나 가치관을 재인식하면서, 민족적 이미지를 미술적 측면에서 찾아보고, 현대미술과의 상관성이나 현대작가들의 작업세계에 미치는 영향 등을 살펴야 한다.
그러나 전통적인 미의 계승 및 발전을 위한 측면에서의 미의 재현이라 미의 창작에 앞서 미의 발견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하며, 새로운 해석과 비판의 과정을 통하여 그 가치를 부여받게 된다. 즉 오늘날 전통회화의 양식이 처한 상황은 그것이 과연 현대조형으로 어떻게 심도 있게 형상화되어 전개될 수 있느냐 하는 데 있는 것이다.
본 연구는 이러한 현실적 과제 속에, 무속미술의 하나의 상징물인 부작의 현대적 해석과 변용의 측면에서 접근한 것이다. 부작은 우리 민족의 전통적 문화소산의 한 부분으로서 우리 민족과 함께 해 왔다. 또한 부작은 전통미의 발련이라는 시점에서, 디자인이나 공예품 활용 여부의 측면으로 연구되어 왔으나, 부작에 내재된 인간의 심리적 위안처로서 ‘심리적 정화작용(Catharsis)'의 기능과 이러한 우리 민족 고유의 독창적인 미의식을 바르게 이해하여 현대적 감각으로 회와 작품상에 유도하는 작업은 활발치 못해 왔다.
비록 부작은 현대문명의 시각에서 비과학적 ·비합리적으로 해석되지만, 인간의 의식활동의 제일보로서 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따라서 우리 민족의 생활감정 및 사상적 변천을 간직한 주술미술인 부작을 조형학적, 미학, 미술사적인 면으로 연구하는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이다. 미술 혹은 예술은 우리의 삶 깊숙한 문제로부터 시작되어 삶의 강한 뜻과 소망을 담고, 또 이를 시각적 형식을 통해서 풀어내어 미술가 자신은 물론이가 감상자에 어떤 힘을 발휘한다. 따라서 미술이라는 행위 자체는 삶을 일궈나가는 필연적 도구라고 할 수 있다. 주술은 현대에도 사라지지 않았으며, 이러한 ‘현대적’ 주술 미술이 작용하고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미술에 바로 주술이 작용하고 있다. 요컨대 주술미술은 시대를 초월하여 인간 중심에 존재하는 근원적 미술인 것이다.

1)符作 : 김민기는 『韓國의 符作』에서 “부작은 나뭇잎, 죽신이나 나무껍질, 가죽, 대쪽, 나무쪽, 헝겊, 종이 등 편면재로에 그리거나 찍은 부적(符籍)과 돌, 뼈, 조개, 이빨, 발톱, 털, 깃털, 씨앗, 귀금속 등을 그대로 또는 일정한 모양으로 만든 입체물 모두를 포한하여 부작(符作)이라고 한다.”라고 주장했으며 본 연구에 있어서도 같은 정의를 취한다.
2)風流道 : 풍류도는 고조선의 단군에서 발원하여 신라의 화랑으로 이어지는 국선화랑(國仙花郞)이라 할 수 있다.
류동식은 “우리나라에 玄妙한 道가 있었다. 이를 風流라 하는데, 이 敎를 설치한 근원은 仙史에 상세히 실려 있거니와 실로 이는 三敎를 포함하였으며 모든 민중과 접촉하여 이를 敎化하였다.”를 통해 다음과 같이 진술한다. “ 郞道는 결코 濡佛仙 三敎를 종합해서 만들어낸 어떤 종교 문화가 아니다. 이미 있었던 종교 문화가 능히 三敎를 포섭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 전통적인 종교 속에서는 이미 濡佛仙 삼교의 요소가 들어 있기도 했다는 뜻이다. 그러한 전통적 종교를 우리는 巫敎라고 했다. 그러므로 화랑도는 일단 무교가 주최가 되어 유불선을 흡수한 가운데 새로이 형성된 것으로 설명된다.” 류동식은 여기서 仙敎를 “ 來의 神仙思想을 가리키는 것”으로 읽는다. 풍류도는 고대 한국으로부터 계승되어 온 민족 고유의 사상이자, 신선도(神仙道)를 뛰어 넘는 자연 · 인생 · 예술 貫熏예술이 혼연일체가 된 삼매경에 대한 심미적 표현으로 그 맥이 면면히 이어져 온 민족문의 기초이념이다.





부작을 통해 본 생명성과 한국성

작가 노태범은 우리 한국인의 전통적인 삶의 흔적들 가운데 하나로서 주술 혹은 생명성과 직결되는 부작(符作)이라는 대상을 예술적으로 형상화시키는 작업을 일관되게 추구하고 있다. 주술적인 성격과 함께 오래 전부터 우리의 전통적인 삶의 일부였던 부작을 이미지화시켜 본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라 할 것이다. 작가가 부작의 원형을 찾는 작업은 마치 무단이 잡귀의 한적을 좇거나 푸닥거리하는 것과 같은 차원의 것이 아니다.
그의 관심은 부작에서 나타나는 순수한 예술성에 자신의 작업을 기조로 하여 조형학적, 미학, 미술사적으로 접근해봄으로써 인간의 삶과 오랫동안 함께 해 온 부작에서 나타나는 원초적 조형성을 현대적 미감으로 재해석해 내는 데 있다. 이를 위해 그는 박사과정에서 보다 체계 있고 심도 있는 연구를 하였고, 주술적인 차원에만 국한되었던 부작을 마침내 미거, 조형적으로 분석하는 연구 성과를 거두었다고 생각된다. 이글은 그의 이러한 연구를 중심으로 한 몇 가지 결과물을 살펴보고 그의 작품 세계와 연관되어 나타나는 예술성을 개술하는데 초점을 두었다.

노태범은 대학교 재학시절부터 지금까지 부작과 주술성에 대해 꾸준히 연구하고, 이를 토대로 한 일관된 예술 세계를 견지해 왔다. 부작에 대한 그의 연구는 ‘보다 독창적이고 세계적인 한국미술의 추구’라는 깊은 뜻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그가 우리의 전통적인 부작을 통하여 얻고자 했던 것을 크게 두가지로 정리해보면 ‘한국성’과 ‘생명성’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그가 추구하는 ‘생명성’은 형식이나 내용적 형석이나 내용적 측면뿐만 아니라 시간적, 방법적인 측면 등에서도 포괄적이면서 구체적이므로 더욱 흥미를 끈다. 이처럼 그의 생명성을 중심으로 한 일련의 전개는 여러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데, 좀 더 구체적으로 보면 은유성, 우연성, 자연성, 환경성, 친화성, 인간성, 원초성, 상징성 등을 들 수 있다. 외적으로는 부작이라는 하나의 틀을 가지며, 내적으로는 ‘기운과의 교융’이라는 동양적인 사유 방식으로 풀어헤치면서 보다 구체적이면서도 실천적으로 접근하고 있어 주목된다.
그는 생명성을 바탕으로 한 예술적 교감을 위해 이처럼 다양한 각도에서 접근하고, 이를 보다 더 분명하게 체현시키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으로 부작의 이미지를 극대화시키는 작업을 시도하여 왔다. 이 과정에서 작가는 크게 제 차례에 걸쳐서 작업의 변화를 가졌는데, 그 하나는 부작의 이미지를 체험하고 극대화시키는 것이다.
1990년을 전후해 진행된 일련의 초기 작품에서는 한지나 종이 등을 녹여 이를 화면에 두들겨가며 부작에서 나타난 조형적 이미지를 찾고자 하였다.
이후 삼사년 동안 그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조각난 나무, 밟히고 구겨지고 찢겨진 종잇조각 등을 통하여 새로운 조형미를 발견하고자 하였으며, 이를 통하여 본질적인 생명적 이미l지를 체득하고 여기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 작업을 시도하였다. 이에 그가 추구하는 부작과 관련되어 형성된 것들로서, 이 부작의 이미지는 자신의 예술 세계를 여는 통로로서의 역할 뿐만 아니라, 관객들과의 소통을 위한 매개체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세상에는 로고스에 상응하는 진실이 없음을 깨달은 작가 노태범은 무미건조한 대상들이니 재료들을 가지고 거기에 새로운 미감의 생명성을 부여하는 작업들에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시각적인 영역에서의 응시(凝視)와 조응(照應)을 통해 감각적이면서도 즉흥적인 형상을 표출해내기도 하고, 치밀하여 밀도 있는 과학적인 인간 문명을 자연에서의 소통 과정을 통하여 친화적으로 ‘풀이’하는 방법으로 접근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방법은 한 개인의 영역에서 벗어나 주체를 초월하여 이루어지는 것으로서, 다른 주체를 포용하고 바라봄을 통하여 현실과 괴리된 주체의 진실을 보여주며, 현실과 실재의 보이지 않는 관계를 와해시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면은 작가의 다음 글에서 더욱 명료해진다.

“본인의 작업은 ‘주술적 유기형상’을 통하여 정복하거나 지배하려고 하는 인간 중심적 세계관에서 자연 친화적인 ‘풀이’ 작업이다. ‘풀이’는 소통과 교류와 관계가 서로 꼬이고 막히고 맺힌 것을 바로 잡고 뚫어서 시원하게 풀어내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풀이’라는 우리말은 해결이나 해소, 해담이라는 한자말로 대신할 수 없는 독특한 의미를 다양하게 지니며 우리 굿문화의 전통과 함께 가는 문화적 상징어이다. ‘신명풀이’가 그렇듯이 ‘풀이’는 일종의 해방이기도 하다.
곧 삼라만상의 대상들을 두루 위함으로 ‘대상과 나’, ‘세계와 자아’ 사이에 조성된 갈등을 원만하게 해결하고, 자연을 위함으로써 자연과 인간 사이에 조성된 잘못된 관계를 온전하게 바로 잡는 것이다. ”

그는 이러한 과정을 생명성의 창출로 보고, 이를 부작이라는 이미지를 통하여 접근하고자 하였다. 생명성의 체현을 위해 일관되게 한지 또는 종이류를 사용하여 인간의 본성과 감흥을 자극시키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나무와 같은 오브제 등을 사용하여 인간의 마음속에 잠재되어 있는 인간 본연의 향수나 생명성을 일깨우고자 하였던 것이다. 이는 라깡(Jacques Lacan)이 이야기하는 ‘실재’(the real)와도 같은 것으로서, 간접적으로 실재를 경험하고 이를 통해 우리 자신이 투사한 세계의 작품을 창출해 내는 것과도 같은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부작의 성향을 지닌 나무 등의 자연의 산물을 통해 자연의 본성을 전달해주기도 한다. 자연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나무의 둥치나 부러진 나뭇가지 등에서 인간이 체험할 수 없는 새로운 이미지를 발견하는 것이다.

작가 노태범은 현대인의 삶 속에 내재된 절망과 좌절을 극복하기 위하여 예술적인 생명성 및 세계와의 소통을 주시한다. 그는 고독한 현대인에게 나타나는 절망과 비애에 친화성과 자연성으로 이루어진 인간적 생명성으로 접근하고자 하였다. 이 통로 역할의 하나로서 부작을 통한 접근을 시도하였고, 내적으로는 자연의 기운과의 교융을 추구하였다. 따라서 그에게 있어 부작은 그의 예술을 보다 다양하게 펼치기 위한 하나의 통로이자 창구라 하겠다.
이부작을 통한 이미지적 접근은 작품으로서의 역할을 훌륭히 수행해내고 있다.
1995년에 제작한 그의 작품 <서천쇠>는 소의 이미지를 형상화시킨 것이다. 이 작품은 양쪽으로 뻗은 부러진 나뭇가지를 이용하였는데, 소의 뿔을 연상시키는 형태의 소의 눈과 같은 형상을 그리고 몇 개의 알 수 없는 색과 선을 그려 넣은 것이다. 이 작품을 통하여 그는 자연에서 찾아낸 나무의 둥치를 자연과 호흡하는 생명성으로 상징화시키며, 인간은 결국 자연의 일부이고 자연과 인간은 하나의 생명력에서 연유되었음을 환기한다. 이러한 생명력이 그가 끊임없이 추구하는 부작을 통하여 어떤 의미로 우리에게 다가오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시원에로의 회귀를 갈망하는 인간의 본성과 맞물려 마음이 고향을 상실한 현대의 우리들에게 하나의 꿈으로 다가온다. 무의식 영역으로 간주되기도 하는 이 꿈의 영역은 주지하시다시피 실현되기 어려운 이상이나 욕망 등을 만족시키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인간은 무의식의 영역에서 비록 지극히 수동적이나마 찌든 현실을 벗어나 무의식적인 진실을 체험하게 된다. 이러한 사실을 노태범은 부작에서 나타나는 상징성을 통하여 환기시키고자 하였다. 그는 이러한 상징성을 원초적 모티브와 신화적 모티브 그리고 무의식적인 초자아 등에서 찾고자 하였다. 이는 프로이트가 주장하는 개인의 성적 욕망이나 상상이 표출되는 것과는 차이를 지닌 것이며, 무의식의 확장적인 해석이 뿐만 아니라 무의식의 구조를 주체와 보다 연관성 있게 다룬 진일보다 방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우리가 스스로 인식하지 못했던 것으로서, 작가 노태범이 추구하는 미적 생명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부작을 토대로 한 작가의 예술세계는 비록 하나의 작은 영역에서 출발하고 있지만 우리 한국인의 삶에 본질적으로 접근하는 중요한 모티브를 제공하고 있다. 한국인의 삶의 시원에서부터 진행되어 온 원초적 이미지로서의 부작은 곧 우리의 삶을 보여주는 한 단면인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한 작가의 작품세계는 한국인의 미의식과 관점에서 문제를 인식하고 그 본질에 접근하고자 하였다. 우리 선조의 삶에서 추출된 생명성과 각박한 현대인의 살아가는 모습에서 나타나는 문제점을 자연과 교감하는 생명성을 통하여 작가 나름대로 접근하고자 한 그의 예술과 작품세계는 한국적 미술에 새로운 또 하나의 시각을 제시하였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또한 작품 제작에 있어서도 독창적이여서, 한지의 흙, 돌가루, 먹, 전통 색채 등을 사용한 독특한 질감으로 한국인의 정서를 고스란히 담았다고 생각된다. 그의 예술 세계는 한국인의 미감을 현식에 구애 받지 않고 자유롭게 표현하며 고스란히 작품화한 흔치 않은 경우라 할 수 있다. 그의 작품은 한지 등을 재료로 한 실험성이 진한 작품들로서, 서양의 현대 미술을 흉내 내지 않고 독창적인 기법을 통하여 우리의 미감을 그대로 담은 것이다. 독특한 기법과 형태미로 보여주는 그의 일련의 작품들은 여느 동양화나 한국화, 서양화보다도 독창성과 예술성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된다. 따라서 노태범의 작품에서는 그 표면 뿐만 아닌 이면, 혹은 다른 차원의 의미와 지금까지 맛보지 못한 또 다른 한국적 미감을 발견할 수 있다.
그의 이번 박사학위 청구전에서 큰 틀을 이루고 있는 일련의 부작에 대한 연구는 절망적인 현대인의 삶과 지역주의 미술을 극복하지 못하는 한국의 현대 미술에 신성한 청량제 역할을 하고 있다. 그가 근 20여 년을 지속적으로 추구한 이 ‘생명성’ 과 ‘한국성’은 그가 보여준 부작을 통한 여러 관련된 연구를 통해 더욱 탄탄하게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따라서 그의 예술 세계는 한국 미술의 정체성 문제나 각박한 현대인들의 삶과 환경 문제 등과 자연스럽게 관련되어 있다. 특히 작가는 부작을 기초로 한 주술적인 의미와 이미지에 대해 꾸준히 연구하면서 이것을 자신의 작품으로 승화시키는 작업을 박사과정에서 더욱 구체적으로 진행시켜왔다. 다시 말해 그는 부작에서 나타나는 알 수 없는 형태나 기호 등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이를 예술적, 학문적으로 접근시키는 연구를 자신의 작업과 꾸준히 병행하여 왔던 것이다.
그는 이러한 연구를 바탕으로 주술에서 나타나는 상징성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독창적인 조형 이미지로 창출하고자 하였고, 그 이론적인 토대를 제시하는 성과를 얻게 되었다. 노태범이 추구한 예술적 시도와 흔적들은 한국 미술이 더욱 탄력을 받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며, 아울러 독창적인 한국적 이론과 적업이 앞으로도 더 많이 창출될 수 있다는 자심감과 가능성을 보여주었다고 여겨진다.

장준석(미술평론가, 문학박사)


Life and Korean characteristics Through the Lens of Talisman

Artist Roh Tae-Beom has worked on designing talisman as an art for a while. Talisman is one of the legacies of Korean life and culture, which is directly related to incantation. Therefore, designing talisman as a form of art is interesting, which is very different from exorcising service prayers and offerings. His main interest of the art work research is reinterpreting various type of talisman based on shapes and forms. To this end, he has further studied talisman through his doctorate and pushed the field of study to the next level by interpreting talisman from the aesthetic perspective. This article is to describe his world of art based on some of his work.
Roh Tae-Beom has studied talisman and incantation since college years. The objective of his study is pushing original Korean arts to the world level. Overall, there are two things he has tried to express through his artwork of designing artistic talisman : Korean characteristics and life. The life in his work involves time and space as well as forms and substance. His approach is unique on the grounds that he express energy from the oriental philosophy perspective. Largely, his approach has changed four times through his career.
In the early 1990s, he designed talisman by pasting melted Korean papers or regular papers. In addition, he used tree branches, shredded papers to be more creative. Through this kind of work, he tried to express life. This also was an attempt to communicate with his audience about this world of art.
The value of his work is that he used dull materials to inspire the value of life from the aesthetic perspective. His works, therefore, describe visional, sensual, and exciting nature of life, which also links the nature to modern scientific culture. This approach looks at the reality and the truth from the third party perspective, which is connected to the reality with imagination. His following statement clarifies the point.

"My work is an attempt to change the people - centered world view to nature friendly one. In other words, I try to solve the complications caused in human relations through my artwork. This implies liberation rather than solution, which is unique and symbolic in the shamanic culture. Solving conflicts between self and the world will lead to a better relationship between the nature and humans."

Roh Tae-beom views this process of liberation as the creation of life. To embody the life in an artful manner, he consistently used Korean papers and regular papers as well as tree branches. The purpose of using these materials is exciting the human nature and sensitivity. This is the same as what Jacques Lacan called the reality. By experiencing the reality indirectly, he attempts to reflect the experience to the artwork. In other words, he tries to find new image from broken tree branches that we can easily find, but often ignored.

After Roh Tae-Beom values the artistic importance and communication with the world to overcome the frustration embedded in modern life. He approached the frustration of human in the modern era from the nature friendly life perspective. Talisman is a measure for this purpose, which is used for communication with the world energy. Thus, talisman is a tool that he employs to describe his world of art. His 1995 work entitled "Seo Cheon Soi" is an embodiment of the image of bullhorn. He used a wishbone shape tree branch and added bull's eyes and several lines and colors. through this work, he attempted to symbolize the life in the nature. His work is an effort to remind us that human are part of the nature and humans and the nature home in the modern era, the life through talisman becomes a dream. However, the dream whether conscientious or not, satisfies human's unrealistic desires. Therefore, human experience the truth unconscientiously when they get way from the reality. Roh Tae-Beom attempts to remind us of this through the symbols of talisman.

He attempts to find the symbols in intuitive motives, mythical motives, and self-unconscientiousness. This is different from Freud' s argument concerning the embodiment of individual sexual desire or imagination.
In fact!, thes approach is an expansive interpretation of unconscientiousness, which links to conscientiousness. This is the beauty of Roh Tae-Beom's work. Although Roh Tae-Beom's world of art based on talisman starts from a small domain, it provides motivation for studying Korean life because talisman has been a part of Korean life throughout its history. Roh Tae-Beom's world of art is based on Korean aesthetic perspective, which attempt to link the traditional life to the modern one. To this end, he connects the nature with modern life. This approach provides a new perspective to Korean arts and thereby has attracted a lot of attention. In his work, he also expresses the uniqueness of Korean arts and emotion through uncommonly used materials, such as Korean papers, soil, rock, powder, and traditional Korean paint. In other words, his world of art is the unconstrained expression of Korean aesthetics, which is not common. Another uniqueness of his work is that his tactics used in the work are different from traditional Western or Oriental paintings, which is creative and artistic.
Therefore, his work shows the next level of Korean aesthetics. In his personal exhibition to fulfill partial requirement of his doctoral degree, he introduced new sets of artistic talisman, which became a fresh shock to the modern Korean art world constrained by regional characteristics. His study of talisman for the past 20years or so pushed the field of talisman research to the next level. In addition, he has attempted to design talisman as an art reflecting the knowledge obtained from the research throughout his doctoral course work. His success of combining the talisman theory with art expression sheds light on creative arts in the Korean art world, which opened the door and provided vision for many to come.

Chang Jook-Seok, Ph. D.

필 선에 의한 기운 생동의 표현
(6,7,8,9회 개인전)

노태범은 한지 또는 펄프를 물에 풀어 마치 종이 찰흙같이 된 원료로 작품의 바탕을 만든다. 그리고 그 위에 독특한 질감과 채색을 가하면서 작품을 진행하고 완성시키는데, 작품의 제작 과정을 보면 장인들이 수공 작품을 만들 듯이 수차례의 공정을 거쳐 작품을 완선 시켜 가는 것이다.
노태범의 작품에서는 주로 부작을 재해석하거나 조형화시켜 나타내었는데 인간과 자연 그리고 동물 등 주변 세상만물들을 화합과 애정을 부작으로 담아내었다. 그러한 작품의 내용을 더 상세하게 보면 가령 자유와 희망의 상징인 새의 친숙한 형상을 통해서 애정과 화합을 유도하고 있으며, 나아가 인간과 새, 물고기, 산, 물이 어우러진 여유로움의 세계를 만들어 내었던 것이다.
부작은 시대와 사회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원초적인 욕망을 표출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제시되었다. 곧 부작의 의미는 삶의 진지함을 나타냄으로서 인간들에게 주위환경과 유대관계를 맺고 심리적인 안정감을 주었던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알지 못하고 있던 초월적인 본능을 깨우쳐 줌으로서 삶을 보다 적적하게 엮어갈 수 있게 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노태범의 작품에서는 부작을 통하여 인간과 자연이 하나 되는 ‘초자연관’을 나타내었다. 곧 인간과 자연이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친화적 관계에서 작품세계가 시작되는 것인데, 부작이라는 기호의 매개체를 통하여 초자연관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이번 작품전에서는 지금까지 이어오던 부작 그리고 자연과 인간의 친화적 화합 형상 작품의 연장이라고 할 수 있는데 모필의 필선에서 나타나는 특성을 작품으로 형상화하였다. 이는 이전의 도식화된 형상들의 이미지를 깨기 위하여 형상을 이루는 필선의 느낌을 자유로운 운필과 속도감으로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모필은 동양 예술표현의 대표적 도구이며 필기구이기도 하다. 이러한 모필을 이용하여 동양미술표현의 특징 가운데 하나인 선을 통하여 작품을 표현한다. 일반적으로 필선에는 사세(四勢)가 있다고 한다. 근(筋) 육(肉) 골(骨) 기(氣)를 일컫는다. 근이란 필이 이어져가는 세이며, 육은 글씨가 갖는 덩어리이고, 골이란 필의 중심적 바른 세를 말하며, 기란 필선의 힘을 말한다.
이와 같은 필선에서 나타나는 속력감의 필의 세(勢)를 작품 속에 표현하려 하는 것이 이번 작품전의 특성이다. 그러한 가운데 필선의 영역과 흐름에서 제외된 여백의 부분은 여운을 남긴다. 화면 바탕이 흰 여백의 공간은 아니지만 필선의 영역이 아닌 부분과 같은 공간감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문인화에서 나타나는 공간의 여유로움이 보여지는 것이다.
이상과 같은 노태범의 작품을 볼 때 그는 필손을 통하여 화면에 기운생동을 불어놓고 있다. 기운생동은 그림이라는 제한된 틀 속에서 바탕재료와 필선 그리고 그려진 대상들의 형태와 색채들이 서로 조화롭게 이루어질 때 나타나는 것이다. 결국 노태범 작품에서 필선의 속도감과 세력은 그의 작품 속에서 기운생동을 이루는 중심요체로서 화면의 생명력과 리듬을 조화 있게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오세권(미술평론가)

초자연관으로 본 인간과 자연의 친화적 세계
(5회개인전)

노태범의 초기 작품은 수목을 바탕으로 하는 작품세계였다. 80년대 전반기에 대학에서 공부를 하였으나 당시 유행하던 수묵화를 자연스럽게 접하였으리라 생각된다.
그러한 그의 작품세계는 대학원 시절 새로운 변화를 가져온다. 그 변화는 채색방법으로 작품세계를 바꾸면서 점차적으로 화면의 바탕 질감을 두텁게 하는 표현으로 나아갔던 것이다. 그러다가 그는 부적(符籍)의 세계를 접하게 된다. 조그만 종이 위에 인간의 소망들이 그림과 문자로서 그려져 있는 것을 보고, 이러한 부적을 동시대적 표현방법으로 어떻게 해석하여 표현할 수 있는가?하는 것에 골몰하게 된다. 그리하여 부적의 형상을 그대로 작품에 전달하는 표현도 하여보고, 부분적으로 부적의 형상을 왜곡시켜 나타내 보고도 하였다. 그러한 가운데 점점 부적을 자신 나름의 재해석적인 방법으로 이해하기 시작한다. 곧 작품에 나타내는 기본 모티브는 부적이지만 시각적으로는 부적과 다른 조형성을 나타내는 작품세계였던 것이다.
그러한 작품세계가 90년대 중반기에 들어 다시 새로운 변화를 겪게 된다. 평면 표현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하여 그는 자신의 주변에 산재해 있었던 나무뿌리와 둥치 등에 채색하여 생명을 부여한다. 그리하여 작은 나뭇가지가 곤충으로 생명성을 얻는가 하면, 나뒹구는 나무뿌리가 인간의 모습을 하기도 하고, 동물의 모습으로 바뀌기도 한다. 곧 나뭇가지나 주변의 여러 가지 물건들을 형상에 맞게 그림을 그려 넣어 생명서 있는 물체로 바꾸어내는 오브제 작품을 시도한 것이다. 그러다가 그는 90년대 말경에 다시 평면 작업으로 전환하게 되는 오브제 작업에서 나타나는 또 다른 한계를 평면 작업에서 보충시켜 보려는 의도에서였다. 지금은 그러한 평면 작업을 통하여 그 나름의 특이한 작품세계를 엮어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근자에 와서 노태범은 한지원료로 자신이 구상하는 형상을 만들기도 하고, 원료에 여러 가지 재로들을 섞어서 기본적인 작품의 틀을 만들기도 한다. 그리고 그 위에 독특한 질감과 채색을 가하여 작품을 완성시키는데, 작품의 제작 과정을 보면 장인들이 수공 작품을 만들듯이 수차례의 공정을 거쳐 하나의 작품을 완성 시켜 가는 것이다.
이번 작품전에서 보여주는 작품들의 내용은 지금까지 이어오던 작품세계의 연장이라고 할 수 있는데, 부적을 동시대적 조형 방법으로 재해석하고 있는 작품세계인 것이다. 부적에는 기복부(祈福符), 벽사부(辟邪符), 호신부(護身符), 소원성취부(所願成就符)등이 있지만 이번 작품에서 나타나는 주제는 기복부의 일종인 화합부(和合符, 愛情符)를 주제로 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리고 화합부는 다시 재해석화 되어 자연과 인간의 친화적 화합의 형상으로 나타난다.
얼핏보아 노태범의 작품세계는 일반적인 조형성으로 이루어진 작품 같지만 자세히 작품을 쳐다보면, 그 속에는 인간과 자연 그리고 동물 등 주변 세상만물들의 화합과 애정을 담아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더 상세하게 보면 자유와 희망의 상징인 새의 친숙한 형상을 통해서 애정과 화합을 유도하고 있으며, 나아가 인간과 새, 물고기, 산, 물이 어우러진 여유로움의 세계를 만들어 내고 있다. 또한 한 쌍의 나비 역시 부부의 금실과 화합을 의미한다. 그리고 원앙은 항상 쌍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화합은 부부의 사랑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민화에서 나타나고 있는 금계도(金鷄圖) 역시 벽사와 대길의 의미를 담고 있다. 봉황은 상상의 새이지만 사후 세계의 태평성대를 의미하기도 한다.
이와 같이 그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여러 가지 화합부들은 인간 삶은 혼자가 아니라 주변과의 유기적인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부적은 시대와 사회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원초적인 욕망을 표출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제시되고 있다. 곧 부적의 의미는 삶의 진지함을 나타냄으로서 인간들에게 주위환경과 유대관계를 맺고 심리적인 안정감을 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부적은 자신이 알지 못하고 있는 초월적인 본능을 깨우쳐 줌으로 인간성 회복을 줄 수 있는 것이다.
이번 노태범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메시지는 부적을 통하여 인간과 자연이 하나 되는 ‘초자연관’ 이다. 인간과 자연이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친화적 관계에서 작품세계가 시작되는 것인데, 부적이라는 상징적 매개체를 통하여 그는 초자연관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그의 초자연적인 작품세계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해진다.

오세권(미술평론가)

생명성의 표현
(3,4회 개인전)

작가들은 누구나 자신의 작품세계가 개성적인 특징이 있기를 바란다. 개성적인 작품 세계야말로 창의성의 발로이며 작가로서 소명을 다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근간에 들어 한국화 작가들에 있어서도 개성적인 작품제작을 위하여 노력하는 작가들이 많이 보여진다. 이전의 전통적인 표현 매체에서 벗어나는 다양한 표현이 보여 지는 것이다. 소재에 있어서도 현장을 중심으로 하는 것들이 있는가 하면 관념적인 것들도 보이고 있어 여러 가지 표현이 보여지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한국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으로 앞으로 기대해 볼만한 변화라고 생각된다.
노태범은 한국화의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는 작가이다. 대학이나 대학원 시절에는 평면작업을 하였고 그 후 마르거나 썩은 나무 둥치를 통하여 동물이나 식물의 형상을 표현한 입체 작품을 시도하고 있는 점에서 이러한 점을 느낄 수 있다.
노태범은 계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작품세계를 추구해 온 주제는 ‘부적’이다. 부적을 직접적으로 화면에 표현하기도 하고, 해체시켜 나타내기도 하며, 상징적인 의미로서 나타내기도 하였다. 그러한 여러 가지 표현은 결국 부적의 동시대적인 해석을 통하여 조형성으로 표현해 내는 작업이었던 것이다. 이번 작품세계도 이전 작품세계의 연속성 속에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는 곤충과 같은 생명체들에 나름의 혼을 부가하려 한다. 기계화되고 분업화된 오늘날 인간 삶에 있어 부적과 같은 존재라면 그것은 자연이며 자연을 이루는 생명체로 확대해 보는 것이다. 이러한 주제의식을 그는 “생명은 우주 생성의 근원이다. 생명은 눈에 보여 지는 구체적이기도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것도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것도 생명현상이라면 내가 추구해온 부적의 의미와 다르지 않다. 쉼 없이 운동하는 생명의 현상 이러한 현상을 비록 표피적이지만 곤충이나 그 외 다른 생명체들의 형상을 통하여 찾아 보려고 한다.” 라고 말한다. 이러한 그의 말에서 그는 생명성과 그가 추구해 왔던 부적의 개념을 서로 연결시켜 보려고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그는 처음부터 부적의 개념을 생명에서부터 찾았다. 마른 나무나 썩은 나무에 동물이나 식물을 그려 생명성을 부여하고 마치 부적처럼 표현한 작품들에서 이러한 점을 느낄 수 있다.
이제 그는 부적에서 나타나는 기호적이고 암호적인 요소보다는 좀 더 구체적인 원인으로 찾아가고자 한다. 그러기에 생명체인 곤충들도 결국 자연을 통하여 인간을 지켜주고 인간과 함께하는 살아가는 상징체로 해석된다. 이러한 점은 앞으로 계속적인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한편 노태범의 작품에서는 작품표면 바탕의 질감이 독특하게 느껴진다. 일반적인 한국화에서 볼 수 없는 바탕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그는 한지를 물에 풀어 한지 죽을 만들어 나름의 바탕화면을 만든다. 마치 종이 찰흙과 같은 느낌의 재료를 또다시 물리적으로 거칠면서도 고를 바탕을 만들고 그 위에 채색을 안착시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화면은 일반화면과 같은 얇은 편면이 아니라 두꺼운 두께로 바탕 처리가 되어 있으며, 바탕에서 느낄 수 있는 질감은 마치 우리의 토질과 같은 느낌을 갖게 한다.
그의 작품에서는 자칫 빠지기 쉬운 소재주의적 침체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는 점이 보여지며, 표현 매체의 방법에서도 새로운 매체적 실험을 통하여 변화해 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앞으로 이와 같이 새로운 표현 방법을 연구해가는 그의 노력에 주목해 본다.

오세권(미술평론가)

“무속에서 생명성의 조형성으로”
(2회 개인전)

근자에 들어 한국화 분야에 실험성의 경향이 많이 돋보이고 있다. 그러한 실험성은 내용적 변화로부터 형식적 변화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변화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내용적 변화로는 이전에 내려오던 전통에서 벗어나려는 다양한 소재와 주제의 확장이며, 형식적 변화로는 재료와 화면형식의 다양화라고 할 수 있다. 그중 재료의 다양화를 통한 실험성이 돋보이고 있는데 이전에 수묵이나 채색을 통하여 나타내던 표현의 획일에서 벗어나 서양의 재료매체를 이용하거나 오브제를 이용하여 작품을 제작하는 것이다.
그러한 가운데 앞 시기로부터 변함없이 이어져 나가는 것은 표현에 있어 ‘한국성’을 어떻게 나타낼 수 있는가?하는 것이다. 즉 전통성에 바탕을 두면서 동시대성을 표현하려는 것이 오늘날 한국화 표현에 있어 중요한 과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전통성을 바탕으로 한 동시대적 표현방법의 전개는 젊은 작가들의 창작표현에 있어 앞으로 풀어가야 하는 부단한 노력이 필요한 시기이기도 하다.
노태범에게 있어서도 동시대적 표현의 과제가 매겨져 있는데, 젊은 작가로서 또 대학에서 강의하는 강의자로서 새로운 실험성과 방법론의 제시를 하여야 하는 책임이 있는 것이다.
노태범의 이전 작품경향은 평면인 화판위에 부적을 조형화시키고 현대인의 삶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현대인을 위한 부적’시리즈였는데, 그의 주된 관심 대상인 부적의 정신성을 조형성으로 나타내는 것이었다. 곧 예부터 전래되어 오는 부적에서 나타나는 글자나 그림의 조형성과 정신성을 재해석하여 동시대적인 표현으로 나타내는 것이었다. 이번 작품의 표현에서는 그러한 ‘부적시리즈’ 표현을 끝내고 나무의 뿌리나 줄기 부분에 각종 짐승이나 물고기 그리고 생, 사람의 얼굴, 장승 또는 주변적 대상을 마치 새겨내듯이 그려내는 것이다.
이는 그의 작품세계에 있어 새로운 변화로 볼 수 있는데, 변화된 작품세계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생명성’과 ‘은유성’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노태범의 작품세계를 분석하여 보자.

생명성
노태범의 작품세계는 생명성을 바탕으로 하여 표현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것은 나무의 뿌리나 줄기를 이용하여 수많은 짐승들이나. 물고기, 새들의 이미지를 마치 새겨놓듯이 그려 넣고 있을 뿐 아니라, 이러한 이미지들에 각기 나름의 생명성을 부여하고 있음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노태범은 나무의 뿌리나 줄기를 이용하여 짐승이나 물고기 등의 생명체들을 만들고 그리면서 작품제작의 즐거움을 찾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를 그는 “뒹굴고 있는 나무 조각들은 나에게 감동을 준다.
나의 작업은 만들고 그린다는 창작행위의 즐거움을 동반하면서 나무나 줄기의 유기체적인 형상에 생명체라는 상징적 이미지의 의미를 부여한다. 이러한 생명체라는 이미지의 의미와 감흥은 이상한 연상작용과 함께 나에게 소중한 카타르시스적 쾌감을 주곤 한다.” 라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 그는 크고 작은 나무 조각을 이미지화 시키는 데 있어 생명체로 연상하여 이미지를 전환시키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주된 ‘생명성’의 표현은 작가 자신의 나무줄기 또는 뿌리라는 오브제에 생명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곧 원래의 나무 조각이 생명체로서 동물의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나무뿌리나 줄기를 선택하는 것에서부터 생명체를 그려 나가는 것까지 모두 노태범의 창작의도에 의하여 생명체를 창조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마치 모든 사물들이 나름의 생명성이나 주어진 형상들을 간직하고 있듯이 노태범은 무생명체인 나무의 뿌리나 줄기의 형태에 완성적인 생명체의 의미를 부여하면서 ‘생명체’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나무뿌리나 줄기에서 느껴지는 생명성에 대하여 그는 “나무가 수명을 다하고 불필요한 부분이 문드러지면 깎아져 없어져 버렸으며 이제 남아 있는 나무의 골격에서 자연스럽고 재미있는 형상을 연출해 주곤 한다. 이와 같이 찢겨지고 문드러진 나무 조각들에서 소중한 생명성을 느낄 수 있다.” 라고 말하고 있다. 이와 같이 노태범 작품의 근저에는 생명성 표현의 밑바탕으로 깔려 있음을 볼 수 있다.
여기서 노태범의 ‘생명성’은 생명체를 그대로 옮겨놓은 재현적인 것이 아니라 선택된 나무의 줄기와 뿌리라는 오브제에서 나타나는 순간적 이미지를 통하여 재해석하며, 만들어 내는 새로운 생명체의 ‘생명성’임을 볼 수 있다.

은유성
노태범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다른 하나의 특징은 ‘은유성’이다. 이러한 은유성은 그의 작품 전체에서 나타나고 있는 특징인 ‘생명성’의 배면에서 나타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는 마치 우리 삶의 세계를 짐승의 이미지에 은유하여 표현되고 있는 것 같이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즉 그가 나타내는 여러 가지 형상들은 마치 ‘동물세상’을 펼쳐놓은 것과 같으며 동물 등의 표현들이 완벽성을 가진 형태들이 아니라 뒤틀리고 꺾어져 있으며 때로는 많은 왜곡을 통하여 나타내는데 이는 인간 삶을 간적적인 은유성으로 나타내고 있음을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때로는 이들이 모여 각기 다른 모습으로 마치 자신들의 의견을 주장하는 듯 하며, 데모레이션을 통하여 자아에 대한 삶의 회복을 나타내기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 갖가지 짐승들에게 차별성이 없는 것 같다. 모두가 왜곡되어진 형태로서 다양한 삶의 이미지를 담고 있으며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인간세계의 이야기들이 은유되어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여기에 노태범이 나타내고 있는 생명성의 고귀성과 인간세상의 간접적 은유를 엿볼 수 있는데, 이들은 모두가 직접적인 이미지로서 보다 간접적이 은유성으로 인간 삶의 다양한 형태를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다음은 노태범의 작품 제작 면을 보자. 작품을 제작하는 방법을 보면 먼저 학교 주변 야산이나 들판에서 나무의 뿌리자 줄기를 채취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이러한 나무들은 대개가 말라 비틀어져 있거나 썩어 내려앉아 각기 괴상한 형태를 취하고 있는데, 이를 말리거나 화학처리를 한다. 그리고 나무의 형태에 맞게 이미지를 잡아낸다.
그 후 나무를 다듬어 작가가 원하는 형태로서 다시 이미지를 잡고 채색을 하는 것이다. 물론, 나무의 형태를 통하여 이미지를 잡고 색채를 더하는 것에는 작가 나름의 세련된 감각이 필요하다. 이와 같이 나무뿌리 또는 줄기의 오브제 차용에 있어서는 그가 이전에 표현한 ‘부적시리즈’ 방법인 평면의 표현에서 탈피되었음을 볼 수 있는데 이전의 평면적 표현에서 입체적 표현으로의 변화라는 새로운 실험으로 보아야 하는 것이다.
이상과 같이 노태범의 작품세계에 대하여 논의하여 보았다. 그의 작품세계는 ‘생명성’을 바탕으로 깔고 작품으로 작품을 하였음을 볼 수 있었다. 이러한 작품세계에 있어 몇 가지의 과제가 있음을 볼 수 있는데, 가장 큰 과제는 나무의 뿌리

Comments

Apple♥
본인 메일로 본인 메일에 내용 복사해서 보내셔도 될거같은데요.
아님... usb하나 구입 좀 하시던지요.. ㅡ,.ㅡ;; 
마법사 온
임시라면, 또 내용으로 보건대, 게시판의 성격에 현저히 맞지 아니하며,
더군다나 전에 올리신 글들도 모두 이런순수하게 개인메모로 글을 올리셨네요.
이제 지우시는게 좋겠네요.
이전글까지 "싸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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